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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선진국으로 가는 깔딱고개에 서서

얼마 전 하버드대 교수의 강연을 들은 적 있다. 교수는 자신이 사회역사학자로서 오랜 연구를 해왔지만, 지구역사상 가장 단기간에 엄청난 발전을 이루기로는 한국이 유일하다고 추켜세웠다. 한국은 1970년대 초만 하더라도 GDP가 2000달러에 못 미쳤고, 불과 30여년 만에 GDP 2만달러를 넘어섰으니 기적이다. 그런데 그 교수가 한국 사람들을 만나 보니 2007년부터 성장이 정체된 원인과 돌파구를 찾고자 안달이 나 있더라는 게다.

자신이 보기엔 그 이유가 의외로 간단한데 벌써 7년째 한국은 우왕좌왕 헤매는 것 같다고 했다. 그래서 “그럼 그 이유가 뭔가요?”라고 물었다. 답변은 간단했다. 한국은 사람으로 비유하면 아이가 급격히 성장해 덩치는 어른처럼 됐는데, 생각하는 것(의식·마인드)은 아직 중학교 수준이라는 것이다. 교수는 “한국이 5만·10만달러 국가로 성장하기를 원한다면, 최우선책이 선진 의식을 통한 국가 점프”라고 아픈 지적을 내놓았다.

선진의식이란 무엇일까?

나 자신조차 애들이 친구들과 놀러왔을 때 ‘쟤는 공부 잘해?’ ‘부모님은 뭐 하신대?’ 하고 물어본 일이 떠오른다. ‘쟤는 공부는 잘 못하는데 성격이 너무 좋아’라고 하면, 속으로는 이왕이면 공부 잘하는 친구와 어울리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우리는 성적이 인격이고, 매출이 인격인 사회에 살아오고 있다. 공부 잘하는 애들은 항상 칭찬받고 대우 받았다. 회사를 운영해 보니 직원으로는 기본 실력에다 인품까지 갖춰진 인재가 최고다.

선진의식의 첫 전제는 자기정체성 확립이라 생각한다.

암기 위주의 공부와 환경 속에 우리는 자기정체성 확립을 위한 투자와 노력이 부족했다. 학교 때는 전혀 배우거나 접하지 못했던 자기성찰, 삶의 의미, 행복의 개념 등에 대해 잘 정립되지도 못한 채, 곧바로 치열한 삶의 현장에 뛰어든 셈이다.

둘째는 자기정체성이 확립된 바탕 위에 이타성을 가져야 한다. 스펙 좋은 수많은 사람들은 자기가 옳다는 확신에 도무지 다른 사람을 인정하지 못한다. 몸담은 조직에서 잘 안 되는 사람들은 자기가 부족하도 생각하지 않거나 못하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다들 정치적 영향의 희생자거나 줄을 잘못 서서 희생됐다고 생각한다. 회사가 정신 못 차리고 있다는 원망도 곁들여진다. 결론적으로는 부하직원들이나 동료, 상사를 인정 못하는 사람들이 조직에서 떨려나간 사례가 많다고 본다.

인간은 누구나 위대하고 귀한 존재임을 알고 상대방을 존중하고 현재 내 손안에 있는 것에 감사하고 만족할 줄 아는 것이 값진 인생을 사는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숱한 성현들이 가르치지 않았는가?

셋째, 공동체 관점(정부 차원)의 선진의식은 증상에 대한 치료가 아니라, 원인에 대한 치료가 중요하다. 문제에 대한 원인을 잘 파악해 기존 생태계가 변할 수 있게 치료해야 한다.

지난해 새 정부가 들어서고, 창조경제를 정부 정책 근간으로 잡은 것은 세계 흐름상 아주 적절하고 필요했다고 본다. 2년 가까이 지난 지금 돌아보면, 창조경제의 필요성과 중요성은 많이 강조된 것 같다.

그런데 계획 또는 실행 단계로 들어가면 총체적 난국이다.

어쩌면 당연할 수 있지만 예전에 해오던 대로 하길 원하는 인간의 본성과 고착된 사회 이익구조 때문이다. 극단적으로 기득권층의 변화 무관심 때문도 크다. 기본적으로 인간은 변화를 싫어하고 자기 기득권이 낮아지는 것은 더욱 싫어한다. 사실 그래야 인간이다. 그런 사람들이 나쁜 게 아니다.

나라 전체적으로 선진국으로 발전하는 것을 반대할 사람은 없을 것이다. 앞으로 선진국으로 가는 데 가장 중요하고 필수인 선진의식을 높이는 국가적 노력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

요즘 기업들도 관리하고, 독려하는 것으로는 더 이상 회사가 성장하지 못한다는 것을 느끼고 있다. 일하기 좋은 기업으로 손꼽히는 곳 대부분이 자율적이고 인간중심의 기업 문화와 투명경영을 투철하게 지키고 있다.

이젠 국가적으로 SW의 중요성과 육성도 한번 짚어봐야 할 것 같다.

창조경제, 그중에서도 SW로 인한 부국 건설을 겨냥한다면 이렇게 돼야 한다.

정부는 기존의 여러 룰에서 벗어나 미래부가 독립적이면서 도전적으로 일을 하게 해야 한다. 예산과 조직인사를 독립적으로 하도록 해야 한다. 장관 주도하에 예산집행과 조직인사에 대해 독립권을 줘서 벤처 식으로 소신껏 일할 수 있게 해야 한다.

벤처기업을 경영하기 전 모 대기업에 2년여 동안 일을 맡은 적이 있는데, 정말로 경영자의 생각이 남달랐다. 예산 50억원을 줄 테니 알아서 필요한 사람 뽑고, 맡은 신규사업을 성공시켜 달라는 부탁과 그 기업 내의 행정, 감사 등에 일절 터치가 없었다.

단지 한 달에 한 번 정도 진행상황 보고나 간부 워크숍, 교육에만 참석해 달라는 주문이었고 결과적으로 꽤 성과를 냈다.

국가 차원에서 창조경제나 미래부는 기업으로 치면 신규사업이고, 신규사업본부다. 신규사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기존의 틀에선 가능성이 많이 떨어진다.

넷째, SW 산업이 효자 역할을 하게 만들기 위해선 선진국 시장의 생태계와 한국의 생태계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고, 정책을 펴나가야 한다. 선진국은 대기업이 SI 자회사를 둔 사례가 거의 없는데, 유독 한국에는 SI 자회사들이 많은지, 어떤 시장생태계가 필요한지를 고민해 근원적 처방과 정책을 펼쳐야 한다. 정부는 철저히 장만 마련해주고 시장이 클 수 있게 참아주는 부양 정책위주로 해야 한다. 정부가 직접 나서 시장을 정리해주고 문제를 해결하려는 시도는 이젠 절대로 하면 안 된다.

공공영역에서 SW를 무상으로 만들어 배포해 민간 시장을 파괴하는 행위는 시장을 죽일 뿐 아니라 한국 SW회사들이 세계로 진출할 수 있는 기회를 잘라버리는 것과 같다.

국가적 비용을 줄이기 위함이라는 명분에 따라 우리 시장이 말라버리면 더 큰 국가의 수입, 즉 세금이 줄어드는 것 아닌가 한다.

마지막으로 요즘 마음공부, 힐링, 지식콘서트 등 각양각색의 다양한 시도와 반응들이 일어나고 있다. 이에 정부 차원의 새마음운동(선진의식운동본부)처럼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노력을 펼친다면 우리 후대에 선진국으로서 자긍심을 선물할 수 있을 것이다.

주제 넘는 욕심까지 부려본다면, 무난하고 무탈한 공무원보다는 도전적인 공무원이 잘되는 나라가 선진국가가 아닌가 싶다. 요 몇 년만 이 깔딱고개를 잘 넘으면 희망이 보일 것 같은데, 조금만 더 지켜봐주고 도와주기 바라면서….

김학훈 날리지큐브 대표

2014년 12월 23일, ‘전자신문 미래포럼’에 기고